백악구간

♣ 동영상을 보고 구간의 순성 계획을 세워봅시다.

   동영상을 따라 이동해 보아도 좋아요. 약 3시간 코스를 1시간 24분 영상으로 만들어서 좀 빠르니 중간 중간에 일시 정지를 누르면서 따라가 보세요. 중요 부분에 도착하면 자막으로도 표시를 해주고 영상으로 한 바퀴 집중하여 돌아봐줘요.

♣ 백악구간 (간단 설명)

☞ 백악 구간: 창의문~혜화문거리  4.7km
   * 창의문-창의문 안내소-백악 돌고래 쉼터-백악 쉼터-백악마루-1·21 사태 소나무-청운대-암문-백악 곡성-백악 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 안내소-우수조망명소-와룡공원-암문-서울과학고등학교-경신고등학교-혜성교회-두산빌라-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공관)-혜화문
☞ 소요 시간: 약 3시간
☞ 난이도: ★★★★★

♣ 창의문

 창의문(彰義門)은 돈의문과 숙정문 사이에 있는 한양도성 4소문 중 하나로, 서북쪽을 지키는 문이고, 북문, 자하문으로도 불러요.
   북한과 양주 방면의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문을 닫은 채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어요.
   1623년 인조반정* 때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곳이기도 해요. 창의문 문루에 오르면 서쪽에 현판이 하나 걸려 있는데,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신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 * 인조반정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임금이 된 사건이에요.>
   2015년 12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었어요.

<전해오는 이야기>
   대개 성문은 방향에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져 있거나 거북, 봉황, 기린, 용이 그려져 있어요. 이것에 따르면 북소문인 창의문에는 봉황이 그려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닭이 그려져 있어요.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흡사 지네를 닮아 지네의 독기가 문을 넘어 궁궐에 이른다 하여, 홍예문 천장에는 지네의 천적인 닭을 닮은 봉황을 그렸다고 해요.
   평시에는 문을 닫아 두었다고 해요. 다만 '군사들에게는 개방하라'는 세종의 명에 따라 강무에 참여하는 군사에 한하여 통행이 허용되었고 사냥하러 나가는 왕과 왕실 종친들만이 은밀하게 이용하는 비밀의 문이 되었지요. 국가적인 공역(工役)을 수행할 때와 같이 긴요한 경우에만 성문을 열었다고 해요.

♣ 백악마루

   창의문에서 백악마루로 이어지는 구간은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성곽을 쌓았는데 한양도성 전체 구간 중 으뜸가는 절경이라 할 만해요. 이 구간의 순성길은 안전을 위해 모두 계단으로 만들었는데, 운동량은 많지만 등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돌고래 쉼터·백악 쉼터에서는 숨을 고르며 수려한 풍경을 감상해도 좋지요.
 
   백악마루, 도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白岳山 海拔 342m’라고 적힌 표석이 서 있어요. 이곳에 서면 경복궁과 세종로는 물론 한강 건너 63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오지요. 산세가 ‘반쯤 핀 모란꽃’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지요.

   백악(북악산, 342m)은 옛 서울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높고, 공극산(拱極山), 면악(面岳)이라고도 하였어요  한양도성은 백악을 기점으로 축조되었어요. 처음 성을 쌓을 때 공사 구간을 97개로 나눴는데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붙였으니 시작 구간은 천(天), 끝나는 구간은 조(弔)였어요. 이곳이 바로 천(天) 구간에 해당되요.

   1968년 1·21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부터 개방되었어요.

♣ 1.21사태 소나무

   백악마루에서 청운대로 내려가는 길에 1·21 사태 소나무가 있어요. 수령이 200년 정도 된 나무인데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어요. 이 총탄 자국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우리 군경이 교전한 흔적이에요.

   이곳에서 성 바깥을 바라보면 북한산과 백악 사이에 자리 잡은 평창동이 한눈에 들어와요. 평창동이라는 지명은 선혜청의 부속 창고인 평창(平倉)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지요.

♣ 청운대

   남쪽으로는 경복궁, 광화문(육조거리), 새종로를 볼 수 있고, 북쪽으로는 북한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백악 곡성

   곡성(曲城)은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해요. 한양도성에는 인왕산과 백악산에 하나씩 있어요. 이 중 백악 곡성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는데 도성을 둘러싼 서울의 산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에요.

♣ 암문

   암문은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하거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만든 작은 문이에요. 평소에는 돌로 막아 두었다가 전시에만 사용하는 비밀 통로이지요. 현재 서울 한양도성에는 모두 여덟 곳의 암문이 있어요.
   이 구간에는 암문이 두 개가 있어요. 암문을 확인해 보세요.

   암문 밖 순성길 - 조선시대 도성 안과 밖에는 각각 군사들이 순찰을 도는 순성길이 있었어요. 조선후기에는 어영청, 금위영, 훈련도감의 세 군문이 각각 8패씩을 내어 도성 주변을 순찰했어요.

♣ 백악 촛대바위

   촛대바위는 전망대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13M의 거대한 바위가 바로 촛대바위이며 명칭의 유래는 바위의 모습을 정면인 청운대에서 바라보았을 때 촛대모양을 하고 있다하여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촛대바위의 상단부분에는 인위적인 지석이 올려 져있는데 이는 1920년 일제강점기 일제가 민족정기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쇠말뚝을 박았던 곳을 표시해 둔 곳입니다.
   촛대바위는 일제가 우리나라 땅의 혈을 끊고자 쇠말뚝을 박았던 곳이에요. 1920년대에 경복궁과 일직선이 되는 이곳에 말뚝을 꽂았는데, 사람으로 치면 머리의 정수리 부분이지요. 조선 땅의 머리 부분에 쇠말뚝을 밖아 이 땅을 영원히 통치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낸 것이지요. 다행히 말뚝은 제거되었어요. 
*출처: https://blog.naver.com/py1978/221882600497

♣ 숙정문

   숙정문(肅靖門)은 한양도성 4대문 중 북쪽에 있다해서 북대문, 북문, 북정문 등으로 부르는 대문이죠.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으로, 이후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  '엄숙하게 다스린다' 는 의미로 숙정문(肅靖門)으로 불렸어요. 북방의 경계를 엄하게 하여 도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이지요.
   숙정문은 나쁜 운을 막아주는 문이라 하여 새해가 되면 정월 대보름이 지나기 전에 삼청동 깊은 골짜기를 거쳐 숙정문까지 세 번 오르내렸다고도 해요. 그리고 장마가 지면 하늘을 맑게 해달라는 기청제, 가뭄이 심해지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어요.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산 속에 있어 성문의 기능은 하지 않았고 1413년 폐쇄되었어요.
   북소문인 창의문(彰義門)과 숙종 때 만든 ’지혜를 넓힌다‘는 뜻의 홍지문(弘智門)이 북대문의 역할을 대신하였지요.
    현존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지요.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어요.

   1968년 1·21사태*로 청와대 경비를 위해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개방하였는데, 창의문 안내소~말바위 안내소, 숙정문 안내소 2.2km 구간은 군사작전지역으로 신분증이 꼭 필요해요.
 < *1·21 사태: 북한 김일성의 명령으로 1968년 1월 21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의 군인 31명이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기습하여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정희를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숙정문 안내소에서 삼청각으로 갈 수도 있고,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하늘마루로 갈 수도 있어요.

♣ 말바위

   말바위는 삼청공원 안에 있는 바위로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요. 백악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여서 말(末)바위라 하였다고도 하고,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전에 이 바위에 말을 매어 두어 말(馬)바위가 되었다고도 해요. 동쪽 능선을 따라 백악에 오를 때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는 지점이에요. 그래서 말을 매어 두는 바위라는 설이 유력해요.

   우수조망명소는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에서는 성북구 방향이, 다른 한 곳에서는 종로구 방향이 보여요.
   우수조망명소는 숙정문 안내소 · 말바위 안내소 · 삼청공원 ·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들이 갈라지는 분기점이기 때문에 안내표지판을 잘 확인해야 해요.
   창의문·숙정문·말바위 안내소와 삼청각으로 갈 수도 있고,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하늘마루로 갈 수도 있어요. 

♣ 와룡공원

*사진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

   와룡공원은 용(龍)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을 하여 와룡동이라고도 해요.

♣ 경신고등학교

   경신고등학교는 1886년에 서울에 설립되었던 중등과정의 사립학교로 미국 초대 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하여 설립된 우리 나라 근대학교의 하나에요.

   경신고등학교의 북쪽 담장에는 도성 훼손의 흔적이 대단하게 나타나 있어요. 성돌 위에 담을 쌓아버린 거지요.

♣ 혜성교회

   혜성교회의 담장 또한 도성의 성벽 위에 올라타 있어요.

♣ 두산빌라

   두산빌라의 담장 또한 도성의 성벽 위에 올라타 있어요.

♣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옛 서울시장 공관)

   서울시장 공관은 서울 시내에 얼마 남지 않은 1940년대 목조 건축물이에요. 1959년부터 20년간 대법원장 공관으로 4‧19 혁명재판의 판결문이 작성되는 등 대한민국 사법부의 중요한 역사현장이에요. 또한, 1981년부터 2013년까지 33년간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면서, 시민들과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는 등 24시간 잠들지 않는 행정이 이루어진 서울시 역사의 일부이기도 해요.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에는 제1 전시실- 한양도성과 혜화문, 제2전시실-시장공관과 한양도성, 제3전시실-시장공관과 역대 시장, 제4전시실- 혜화동 27-1번지의 역사 등이 전시되어 있어요.

   센터운영시간 : 09:00 ~ 18:00
   전시관 관람 : 09:30 ~ 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기념행사 시(사전공지)
   관람료 : 무료

♣ 혜화문

  혜화문(惠化門)은 한양도성 4소문 중 동쪽에 있어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해요.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惠化)로 고쳤지요. 혜화문은 '은혜를 베풀어 가르치는 문'이라는 뜻이에요.

   북쪽 지방인 함경도로 가려는 한양 사람들은 숙정문 대신 혜화문을 많이 이용했어요. 소문인 혜화문을 지키는 군사도 30여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혜화문을 대문처럼 이용했다는 증거이지요.

☞ 전해오는 이야기
   일반적으로 홍예 안쪽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어야 하나, 혜화문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어요. 옛날 이곳 주변에 새가 너무 많아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니까 이를 막기 위해 용 대신 새들의 왕인 봉황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해요. 지네처럼 생긴 땅의 기운을 막기 위해 봉황을 닮은 닭을 그려넣은 창의문과 비교해볼 수 있지요.